경순왕은 신라 제56대 왕으로 마지막 왕이다. 성은 김, 이름은 부로
신라문성왕의 6대손이며 927년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사망한 후 왕위에 올랐다.
경순왕이 왕위에 오를 당시에는 국가가 후백제, 고려, 통일 신라로 분열되어 있었고
후백제의 잦은 침공과 각 지방 호족들의 할거로 국가 기능이 마비되는 상태였다.
이에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고자
신하들과 큰아들 마의태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려에 귀부하였다.
이때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들어가고 막내 아들 범공은 화엄사에 들어가 스님이 되었다.
귀부후 경순왕은 태자의 지위인 정승공에 봉해지는 한편 유화궁을 하사받고
경주를 식읍으로 받아 최초의 사심관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었으며 43년 후인 고려 경종 3년(978년) 세상을 떠났다.
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사진갤러리-박성근
여행지;숭의전
숭의전지(崇義殿址)는 조선시대에 전조(前朝)인 고려시대의 왕들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게 했던 숭의전이 있던 자리이다.
이곳은 원래 고려 태조 왕 건(王 建)의 원찰이었던 앙암사(仰巖寺)가 있었던 곳으로
1397년(태조 6)에는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건립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 숭의전의 시초이다.
숭의전은 조선시대 1605년(선조 38), 1727년(영조 3), 1789년(정조 13), 1868년(고종 5), 1908년(순종 2) 등
총 5차례에 걸쳐 개수(改修)와 중수(重修)를 반복하였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중에 전소하였으며, 이를 1972년에 사적으로 지정하고 다음해에 재건하게 되었다.
현재 재건된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숭의전(崇義殿, 4왕의 위패를 모신 곳)을 비롯하여
배신청(陪臣廳, 고려 16공신의 위패를 모신 곳), 이안청(移安廳, 위패를 잠시 모셔 두는 곳),
전사청(典祀廳, 제례 때 사용할 제수를 준비 하는 곳),
앙암재(仰巖齋, 제례 때 사용하는 향, 축, 폐등을 보관하고 제사에 참여하는 제관들이 제례준비를 하며 머무는 곳) 등
5동의 부속건물과 내신문(內神門), 외신문(外神門), 협문(夾門) 3동, 운조문(雲鳥門) 등 6개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부속건물들은 모두 돌담장으로 둘러져 내부가 잘 보이지 않으며
앙암재와 전사청은 각각 별도로 독립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마전군 읍지(麻田郡 邑誌)에 의하면
1899년 당시 숭의전은 지금 재건된 것보다 규모가 더 컸음을 알 수 있다.
즉, 당시는 18칸 규모의 정전과 배신청, 이안청, 향배청, 전사청, 주방 등의 건물과 2개의 문이 있었다.
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사진갤러리-박성근
여행지;재인폭포
지장봉(877m)이 원류인 이 폭포는 한탄강 서쪽에 깊숙이 자리해 있다.
높이 약 18m의 폭포가 이루어내는 맑고 시원한 시냇물과, 주변의 울창한 수풀로 경치가 좋다.
특히 여름과 가을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이 고을 원이 한 재인(才人)의 아내가 절색인 것을 보고,
재인으로 하여금 이 폭포에서 줄을 타게 하여 죽게 하고
아내를 차지하려 하자, 그는 자결하고 말았다. 그 후, 사람들은 재인의 한이 서린이 폭포를 재인폭포라 불렀다고 한다.
서울에서 재인폭포까지는 버스로 1시간 30분 거리의 당일 코스이다.
군사작전 지역에 속해 토, 일요일에만 개방되지만, 5~9월에는 평일에도 검문 없이 통과할 수 있다.
재인폭포에서 한탄강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전곡선사 유적지 한탄강 유원지, 숭의전과 같은 볼거리와 쉬어갈 곳이 많다.
보개산 너머 굽이굽이 연천읍 내산리 가는 길은 선경을 보는 듯하고 동막골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피서지로 유명하다.
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사진갤러리-김지호
여행지;연천 전곡리 유적지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전곡 시가지 남쪽, 한탄강이 감싸고 도는 현무암 대지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선캠브리아기에 형성된 변성암류인 편마암과 화강암이 기반암을 이루며
이 암반층을 강원도 평강 지역에서 분출하여 임진강과 한탄강의 강바닥에 형성된 현무암이 넓게 덮고 있다.
현무암 위에 적색점토퇴적층과 사질층의 퇴적물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퇴적물의 상부 점토층이 구석기 문화층으로 석기가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1978년 주먹도끼와 가로날 도끼등 아슐리안형 석기의 발견 이후 현재까지 11차에 걸친 발굴을 통하여
유적지의 성격규명을 위한 학문적 노력이 계속되어 왔고 3000여점 이상의 유물이 채집되었다.
이들 석기의 발견은 1970년대 말까지도 이들 석기의 존재 유무로 동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으로
구석기 문화를 양분하던 모비우스의 학설을 바꾸는 계기로서,
세계구석기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또한 동아시아의 구석기 문화를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하려는 많은 시도를 했고, 이는 한국의 구석기 연구 뿐만 아니라
전세계 구석기 연구를 풍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사진갤러리-박성근
여행지;태풍전망대
태풍전망대는 천하무적 태풍부대에서 1991년 12월 3일 건립한 것으로,
서울에서 약 65km, 평양에서 약 140km 떨어진 중면 비끼산의 가장 높은 수리봉에 위치한다.
처음에는 군사분계선을 기점으로 2km 지점에 남방 한계선과 북방 한계선이 설정되었으나,
1968년 북한이 휴전선 가까이 철책을 설치함에 따라 우리나라도 1978년에 부분적으로 철책을 설치하였다.
태풍전망대는 휴전선까지 800m, 북한 초소까지는 1,600m의 거리에 떨어져 위치하고 155마일 휴전선상 북한과 가장 가까운 전망대로 유명하다.
태풍전망대에는 국군 장병들이 종교 집회를 가질 수 있는 교회·성당·성모상·법당·종각 등이 있고,
북녘에 고향을 두고 떠나온 실향민의 망향비와 한국전쟁의 전적비, 6.25참전 소년전차병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전시관에는 이곳으로부터 2km 떨어진 임진강 필승교에서 수습한 북한의 생활필수품과 일용품,
그리고 휴전 이후 수십 회에 걸쳐 침투한 무장 간첩들이 이용한 침투 장비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사진갤러리-김지호
여행지;평화누리길
경기북부 DMZ 인근 지역은 한국전쟁의 아픈 역사와 온 국민의 통일 염원을 간직한 곳이다.
또한 천혜의 자연경관과 수많은 동식물들의 보금자리이자 구석기시대부터
현대까지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 유적을 품고 있는 곳이다.
평화누리길 트레킹 코스는 이 곳 DMZ 인근에 전쟁과 분단의 흔적, 자연생태가 잘 보존된 곳,
역사 유적지를 찾아 김포에서 고양, 파주, 연천까지 논길, 밭길, 둑길,
옛길을 연결해 누구나 언제나 걸을 수 있는 도보 여행길이다.
[평화누리길 10코스] 고랑포길은 장남교(원당리)~숭의전지까지 18km에 이른다.
이 구간은 18km가 넘는 긴 구간으로 음료, 간식 등 준비가 필요하며 지구력을 요하는 구간이다.
임진강 물줄기를 따라 걷는 상쾌한 코스이다.
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사진갤러리- 한반도관광센터 비켄
여행지;한탄강
한탄강 일대는 화산 활동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용암석이 많다.
이 용암들은 현무암으로 용암이 식을 때 생긴 기포 때문에 구멍이 숭숭 뚫려서 곰보돌이라고 부른다.
또, 한탄강 일대는 경관이 아름다워 일찍부터 유원지로 이름이 높았다.
한탄강 하류에 위치한 한탄강 국민관광지는 연천군 전곡리 한탄교와 사랑교 사이 1.5km 강변에 조성되어 있다.
북한의 평강쪽에서 시작하여 철원, 포천, 연천지역을 흘러 임진강과 합류되는 한탄강은
계곡이 장쾌하고 좌우 절벽이 진귀한 바위들로 이루어져 곳곳에 경치좋은 곳이 많다.
강 위쪽 고석정, 순담계곡과 더불어 아래쪽의 유원지 근처는 각종 위락시설이 들어서고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한탄강 범람으로 인해 수차례 기반시설이 훼손과 수해로 한탄강 국민관광지로 조성하였다.
한탄강이 내려다 보이는 천혜의 위치에 자리잡은 한탄강 관광지에는
자동차캠프장과 캐라반, 공룡을 테마로 한
어린이캐릭터원, 어린이교통랜드, 물놀이장, 생태연못, 축구장 등의 시설을 갖춘 가족휴양지이다.
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사진갤러리-강원지사 모먼트스튜디오